• Elsa Jae Young Park

3. 마음의 소리 들어보기

Updated: Oct 3


기억 재방문하기

어떤 소리를 들으면 그 때 당시의 기분, 상황 등이 모두 떠오른다.

작년 여름, 작가님과 극작품에 대해 회의할 때가 그랬다.

최정금 작가님의 극작 '참을 수 없는 말의 가벼움'은 주인공 우나와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말의 무게> 사운드시네마를 위한 극작 '참을 수 없는 말의 가벼움' 중 일부 발췌]



작가님이 설계한 이야기의 목표는 ‘미지의 아버지를 찾는 것.’ 여기서 필요한 기본적인 상징체계는 시험 및 정체 고백의 상징체계이다. 이 경우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시험은 되풀이 되는 같은 질문과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나타난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맞서고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서로 맞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자기 원수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Coomaraswamy, Hinduism and Buddhism: pp. 6-7)


주인공 우나의 가족에 대한 그 이야기는 눈물이 나서 읽기 힘들다 가도 속이 뻥 뚫리게 통쾌했다.

무엇보다도 잊고 있었던 학창시절 가족과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최 왜 학창시절이 생각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리고 불현듯, 예전에 다녔던 중·고등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추가적인 소리 채집이 필요하기도 했던 터였다.

졸업 이후에 약 15년만에 처음으로 방문하는 모교는 솔직히 가면서도 영 내키지가 않았고 도착해서도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느낌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그 소리들은 -

학교 콘크리트의 울림,

운동장의 국기대 소리,

급식실 가는 길의 쯔걱되는 플라스틱 천장소리….

정말 생생해서 그 시절 그 때의 장소로 나를 초대했다.

[소리채집 중]


가만히 소리를 채집하면서 (보통 소리 채집을 할 때, Barry Truax(WSP)의 Field recording Guideline에 따라 한 구역에서 최소 15분 정도를 녹음한다)

그 시절 누군가에게 죄송하기도 하고 또 어린 시절의 나와 화해라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았니’ 라고 늘 자신을 채찍질 하던 내가 이번에는 ‘넌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라고 말해주었다.


이렇게 <말의 무게>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작곡을 하든, 일상에서든,

소리로 인해 셀 수 없는 감정과 위로를 경험하는 것은 매번 경이롭다.

소리는 단순히 부유하는 것 같지만, 그 에너지는 잊고 있었던 기억을 생생히 떠오르게 할 정도로 엄청나게 강력하다.

그리고 본 프로젝트가 청자에게도 각각이 가지고 있는 그 기억들을 위로하고 초대하는 ‘나와 당신 위로하기’ 사운드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






언어의 바다

말에는 무게가 있다.


그 언어를 선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 길을 누군가는 기분좋게 수영하듯 헤엄쳐 갈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깊은 수면을 만들고 그곳에 잠겨 영영 숨쉬기 어려울 수도 있다.마치 납덩이가 된 것처럼 말이다.그런데 또 그 수면에 기꺼이 함께 뛰어들어 꺼내주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경험은 축적되고 우리를 기쁘게도 아프게도 할 수 있지만

사람 그리고 상황마다, 그 수심이, 헤엄치는 방법이, 또 속도가 다를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의 항해를 언어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즉, 물은 ‘나를 해방시켜주는 도구’이자 ‘나를 무겁게 하는것’이다.

속담에 “사람 속은 천 길 물 속이다”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천 길이나 되는 깊은 물속처럼 사람 마음은 헤아릴 수가 없다. 라는 뜻이다. 그렇게 알기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물만큼 잘 가늠할 수 있는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물'이 본 <말의 무게> 프로젝트에서 말의 ‘무게’ 그리고 ‘온도’, ‘농도’를 가늠할 수 있는 어떠한 개념적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작품의 주 매개체로 설정했다.



👀 #TMI: 난 물을 참 좋아한다. 물의 속은 참 알 수가 없다가도 그래서인지 날 품어줄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로 내 안의 물에서 스스로 잠식되어진 적도 있다. 어떨 땐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이렇게 서투른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마음들을 짧게 소리로 담아 전달한다.

‘나를 해방시켜주는 도구’이자 ‘나를 무겁게 하는 것’ 물을 모아모아.


똑똑똑…철썩철썩..촤악촤악!!

Sound Documentary / Track 01: Water

-02:38

-Stereo

-Recorded in Seoul, Jeju, Uijeonbu 2019~2022





필자소개



Elsa Park(박재영)은 마음의 소리를 음향화하는 작곡가입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겪은 우울증을 영감의 원천으로, 현대인의 심리적 명암을 수학적으로 해체하고 청각적으로 재조립합니다.

학부 시절 재즈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나만의 소리를 찾고자 6년 전 영국 유학길을 떠나 실험 음악으로 전향하였습니다. 2018년부터 데이터 기반의 사운드 작품을 공연·전시하고 있습니다.

10년 넘게 음악을 했지만 아직도 예술계 초년생인 32살의 고군분투와 그와 관련한 창작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공감을 교류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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